탐방일:2015-02-12
《동화사사적비》(1931년)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유가사(瑜伽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것을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 심지조사(心地祖師)가 중창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동화사라는 이름은 중창할 당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상서로운 징조로 여긴 심지조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유사》(13세기)에는 진표(眞表)로부터 불골간자를 이어받은 영심(永深)이 다시 심지조사에게 간자 두 개를 전했고, 심지조사가 그것을 봉안할 땅을 찾고자, 중악(中岳)의 두 신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 서쪽을 향해 던지니 간자가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갔고, 간자가 떨어진 곳이 동화사 참당(籤堂)의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었다. 그리고 심지조사는 그곳에 강당을 지어 간자를 봉안했다고 한다.
세조(世祖) 10년(1465년)에 수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존하는 대웅전 건물은 선조 39년(1606년)에 학인에 의해 세워진 것을 숙종 3년(1677년)에 한 번 수리하였고, 최종적으로 조선 영조 3년(1727년)에서 영조 8년(1732년) 사이에 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헌종 4년(1838년)에 다시 수리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축대 아래 양쪽에는 한 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있고,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대웅전 내부 불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또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