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이룬 곳이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 지방을 지키는 길목이어서 진주성을 두고 조선과 왜의 다툼이 매우 치열하였다. 곧 조선 선조 25년(1592) 10월에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1554∼1592)과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이 진주성을 지키면서 왜군 2만명을 격퇴하였다. 하지만 다음해 6월에는 왜군 4만 여명이 진주성을 공격하였는데,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등이 성 안의 모든 주민과 함께 성을 지키려고 하였다가 끝내 죽임을 당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주차요금은 10분에200원,
입장요금은 성인 2,000원 입니디
▼공북문
▼김시민장군동상
▼영남포정사문루
▼북장대
사람들이 올라와 쉬고 계십니다.
▼창렬사
▼호국사
▼국립진주박물관
▼긴칼
▼촉석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666. 정면 5칸, 측면 4칸. 남강(南江)의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어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1241년(고종 28)에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1365년(공민왕 14)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하였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임진왜란 당시(1593년)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으로 내부에는 논개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 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으며, 지금의 의기사는 의기 창렬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재건한 것이다.(다음백과)
▼진주의암사적비
▼촉석문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김시민장군전공비와 촉석정충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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